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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ible Travel2010/08/24 17:44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에는 수많은 세세한 아이디어와 고민들이 결합된다. 이 프리젠테이션에는 그 중 특히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운송수단과 여행에서의 직접적 행위와 관련하여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는 컨셉아래 시도되고 있는 모색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영문을 번역해서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시간이 되면... 번역도...

Sustainable Design - Transportation and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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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변형석
Photo Essay2010/08/23 23:41



나는 프랑크푸르트에 머물 계획이 없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은 늘 이런 식이다.
안중에도 없던 일은 문득 다가와 눈 앞에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프랑크푸르트라고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밖에 모르는 나는
비행기에 갖혀 열시간, 버스에 갖혀 두시간,
캄캄한 밤, 이름도 모르는 어떤 마을에서 짐을 풀었고, 
내가 본 프랑크푸르트는
다음날 아침
버스를 기다리는 십분 동안 본 것이 전부였다.  

살아가면서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일은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절감하는 순간의 일이다.
그 십분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서울에서 보던 그 눈이
마치 그것이 아닌 양 손사래를 쳤고,
낮게 깔린 세상의 소리들이
오늘을 기억하리라
예언처럼 떠나는 뒷자리에서 수근거렸다.

기억은 여덟달을 저 혼자 맴돌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혼자 성을 지어놓고
거꾸로 맨 정신의 나를 초대한다.
이제 당신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신이 기억하는, 텅 비어, 아름다운 그곳에서
두번째 생을 시작해도 좋지 않으리.
나는 너무 쉽게 끄덕끄덕,
밤새 하나투어에서 비행기표를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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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변형석
Travel Essay2010/08/23 15:03

7년간 일해 왔던 하자센터에 사표를 내고,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막무가내로 고민하던 2008년의 일이다. 나는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라는 조금은 촌스러운 이름의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49일 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강과 낙동강 구간 600km를 청소년들과 함께 걷는 여행. 당시만 해도 도보여행이 국토대장정 같은 극기 훈련의 일종으로나 받아들여졌던 때였으니, 밖에서 본 사람들에게 이 여행이 얼마나 무모하고, 고집스럽고, 미련해 보였을 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 여행의 이름은 "강강수원래"(강과 강의 물을 원래대로라는 뜻)라고도 했다. 그것도 역시 참 촌스러웠다.

무모한 것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출발 일주일 전까지도 3,000만원의 돈은 마련되지 않았고, 밥을 해줄 밥차는 출발 전일에서야 세팅이 끝났다. 잠은 행사 때 쓰는 커다란 텐트에서 잘 계획이었는데, 이 텐트는 비가 오면 빗물이 새들어왔다. 텐트를 치는 장소는 그래서 주로 다리 밑이었는데, 어느 날엔가는 고속도로 교각 밑에 텐트를 치는 바람에 밤새 비가내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혹 노숙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4월 초에 텐트 한꺼풀에 의지해 야외에서 잠을 자는 것은,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와 밤새 싸우다, 해가 떠버리면 잠청하기를 포기하고 일어나는 그런 일이다. 게다 종일 강바람과 빗방울에 시달리다 길가에서 떨며 밥을 먹고, 자동차 배터리에서 끌어온 전기로 간신히 그날그날의 작업을 마치고 자야했던 그때. 샤워는커녕 세수할 물도 없어서 과연 저 강물로 세수를 해도 될까 안될까를 놓고 내기까지 했던 그때. 강물을 더럽힐 수 없다며 식기는 설거지를 아예 하지 않기로 해, 먹을 물과 휴지 한 장으로 닭도리탕 국물의 뒤처리까지 하던, 그렇게 하루하루를 걷고 또 걷던 어느 날 아이들과 나는, 그 여행과, 그 사람들과, 그 땅을, 강을, 비로소 사랑하기 시작했다.

작은 지금 대통령으로 계시는 그분의 대운하 공약 때문이었다. 15조원을 들여서 한강과 낙동강에 3,000톤급 배를 띄우겠다는 그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경악했었다. 그래서 걸어가면서 차분히 보자는 것이었다. 강이란 것이 무엇인가? 강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인간은 강과 함께 어떻게 살아왔고, 살고 있는가? 직접 보고 판단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강에는 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었다. 생명은 물의 자리를 따라 요동친다. 강제로 물을 막아 물밖에 보이지 않는 팔당댐을 지나 한강의 상류로 오르면 그 요동치는 생명의 흔적들이 강 전체를 뒤덮는다. 새와 작은 짐승들과 곤충과 물고기와 슾지의 식물들이 어우러진 밀림과도 같은 생태계의 풍요로움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한강을 지나 낙동강에 이르면 곳곳에 바다 모래보다도 고운 모래사장이 광활하게 펼쳐져있다. 모래사장에는 새들의 발자국이 총총 나있고, 그 뒤를 들짐승들의 발자국이 쫓는다. 맨발로 그 모래사장과 얕은 강물을 오가며 걷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이 없다.

꽃들이 흐드러진 봄, 둑길을 따라 오래도록 걷던 그 평화로운 기억들은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였다. 남은 날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더 이상은 기쁘지 않았다. 일을 하다 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목적지를 이틀 앞두고 부산에 들어서던 날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정자 아래에서 늦은 점심으로 김밥을 먹느라 모두 부산한데, 한 아이는 굳이 정자 밖에서 비를 맞으며 김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얼굴에 빗물인 것처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그 옆에 섰다. 나도 김밥을 밀어 넣으며 그가 보는 곳을 보고 서 있었다.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그 순간을 그저 지켜주고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49일간 우리를 스쳐지나간 490가지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같다.

그가 얼굴을 훔치며,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어깨를 한번 툭 쳐주고 돌아섰다.

안녕. 또 한 번의 여행, 또 한 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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